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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9 23:07
하드 SF 르네상스 2 - 8점
그렉 이건 외 지음, 강수백 외 옮김/행복한책읽기


1. 폴 맥콜리, 유전자 전쟁
다국적 기업의 비윤리적 행태를 풍자한 작품으로, 유전자와 관련된 그런대로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넘친다. 그렇게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2. 그렉 이건, 내가 행복한 이유 (스포일러 포함?)
<쿼런틴>은 흥미로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지만 독자에게 친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느낌은 없었는데, 이 단편은 흥미롭고도 친절했다. 도입부 회고적 서술의 흡인력이 정말 강하다. 내적 경험에 대한 묘사가 훌륭해서 절로 몰입하게 된다. 신경 재건술, 의뇌라는 아이디어도 멋진 유비다.
쇼펜하우어의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원할 수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떤 대상에 즐거움을 느낄 것인가를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진정한 자유의지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이미 단편으로 나와 있구나.
아래는 인간 개체의 정서 경험에 대한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

아버지를 바라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모두 내 머릿속에 있다. 그들뿐만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한 먼 과거부터 존재하던, 인간과 원인 모두를 포함한 몇천 만 명의 조상들 또한 내 머릿속에 있다. 거기에 4천 명을 덧붙였다고 해서 뭣이 대수인가? 인간은 모두 나와 같은 유산으로부터 스스로의 인생을 만들어 가기 마련이다. 반쯤 보편적인 동시에 반쯤 특수하며, 가차 없는 자연도태에 의해 반쯤 예리해지고, 우연이라는 자유에 의해 반쯤 누그러진 유산을 물려받은 것이다. 내 경우는 그런 과정의 세부를 조금 더 적나라하게 의식해야 한다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다. 무의미한 행복감과 무의미한 절망감이 복잡하게 뒤얽힌 경계선상을 걸어가면서. 혹시 나는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경계선 양쪽에 펼쳐진 것들을 뚜렷하게 보는 일이야말로 그 좁다란 길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일 수도 있으니까.

아름다운 구체적 묘사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추상적 의미를 담고 있고, 감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적 즐거움까지 안겨 주니 어찌 이상적인 작품이 아니랴.

3. 데이비드 브린, 붉어지기만 하는 빛
이런 게 하드 SF구나, 라는 느낌이었다.
참신한 물리학적 아이디어 딱 하나로 구성된 이야기다. 군더더기라곤 없다. 표면적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지만, 여러 번 읽으면서 시사하는 바를 찾아보는 것도 즐거웠다. 곱씹어 볼수록 위트 넘치고 멋스러운 작품이다... 
이 책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으라면 <내가 행복한 이유>와 <붉어지기만 하는 빛>을 고를 것이다. 나한테 <내가 행복한 이유>가 친근하고 애착이 가는 단편이라면, <붉어지기만 하는 빛>과 같은 작품은 동경의 대상이다.

4. 제임스 패트릭 켈리, 공룡처럼 생각하라
대닛과 호프스태터의 '이런, 이게 바로 나야!(Mind's I)'의 서문이 생각났다. 사람을 분자 단위로 스캔해서 재조립하면 같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아에 대한 의문을 품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고(Mind's I가 81년에 나온 책이니 그다지 새로운 아이디어는 아니겠지만), 죽음과 관계된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았다. 확실히 재미있다.

5. 마이클 스완윅, 그리핀의 알
다 읽고 나서 주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다시 읽기에는 너무 지루했다. 엄청난 자료 조사의 결과라니 작가 분께 죄송스러울 따름. ㅠㅠ

6. 데이비드 랜폴드, 다른 종류의 어둠
판타지 느낌. 블리트라... 꽤 흥미로운 아이디어이지만 무언가가 2% 부족했다.  

또 볼텐가?  소장해서 두고두고 / 기회 되면 몇 번 더/ 기약 없이 / 절대로 멀리
왜? 다른 단편집(예컨대 '오늘의 SF 걸작선')보다 마음에 드는 단편 비율이 높다. 그렉 이건, 데이비드 브린, 제임스 패트릭 켈리의 다른 단편 모두 구해 보고 싶을 정도로 아이디어와 이야기 다루는 솜씨가 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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