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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14 20:51
원래 어슐러 르 귄의 작품 중에서 <빼앗긴 자들>이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어스시의 마법사>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빼앗긴 자들>은 자본주의와 이상적인 사회주의 체제가 어떤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생생한 사고실험과 깊이 있는 성찰을 보여주는 SF이다. 쉽사리 한 쪽으로 경도되지 않고 양 체제의 장단점을 치밀하게 탐구하면서도, 양비론에 빠지지 않고 결론을 내리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이렇게 소개하면 딱딱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표현이 유려하고 감성적이다. 특히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 체제가 잘 맞지 않는 개인의 내적 경험 묘사에 공감이 많이 간다.    
    
<어스시의 마법사>는 <빼앗긴 자들>보다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심상은 읽고 난 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정도로 아름답다. 상징적인 이야기라서 나름대로 의미를 읽는 즐거움이 있다. 예컨대 그림자의 상징을 ‘죽음’으로 보면 테레논은 잠시 죽음을 잊게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는 세속적 성공일 수도 있다. 그림자를 죽음으로 보거나 인간의 어둡고 악한 면모로 보거나, 그림자로부터 도망가지 말고 쫓아가야 한다는 것은 억압하기보다 알고 직면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이라는 뜻일 테다. 결말은 상징적 수준에서든 구체적인 수준에서든 의미심장하다. 아름다운 형식에 이렇게 보편적 가치가 있는 의미를 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문학작품이다.  

이런 소설을 평생 동안 단 한 편만 쓸 수 있으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도 좋다! 어슐러 르 귄은 역시나 훌륭한 <어둠의 왼손>도 썼고 좋은 단편도 무수히 썼으니 작가로서 참 행복하겠다. 다만 이렇게 뛰어난 작가인데도 만년작은 실망스러운 수준이어서 어스시 시리즈 4권 <테하누>(1990)부터는 도저히 즐겁게 읽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어스시의 마법사>만은 나한테 잊지 못할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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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i | 2012/01/19 04:10 | PERMALINK | EDIT/DEL | REPLY
^_^ 테하누에 대해 실망 하셨다면... 번역자가 달라서 그럴수도 있고...
아니면 르귄님이 환상세계에서 현실에 조금 더 가까운 글을 쓰셔서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 드네요...

솔직히 전 10대때 어스시 시리즈를 처음 접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오랜 시간이 지난후 테하누를 읽고...
어라? 다른 사람이 쓴글? 많이 다른 느낌이다...
라는 생각 들었으니까요...

하지만... 뭔가 그분이... 인간의 삶에 대해 조금 더 가미를 하신 그냥 그런 글이라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읽어보면 테하누도 그리 나쁜 글은 아니라고 전 그렇게 생각해요.. ^_^
| 2012/02/02 21:25 | PERMALINK | EDIT/DEL
반가운 댓글에 답이 너무 늦었네요. 저랑 비슷하게 테하누에서 괴리감을 느끼셨군요!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흐르면서 풍부한 상징도 줄어든 것 같고 아쉬워요. 하지만 나름의 미덕이 있다고 하시니 다시 한 번 남은 시리즈를 읽어볼까 합니다.
kali | 2012/01/19 04:15 | PERMALINK | EDIT/DEL | REPLY
^^ 저는 그분의 책중 단편 '오멜라스를 떠나며'와 '어둠의 왼손'을 가장 좋아합니다.
| 2012/02/02 21:29 | PERMALINK | EDIT/DEL
저는 단편은 <기의 비행자들>을 가장 좋아해요. ㅎㅎ <오멜라스를 떠나며>는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걸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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