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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6 01:15
가난한 문화에 향수를 느끼고 애착을 느끼는 건 현재 전혀 가난하지 않고 다시 가난해질 리도 없는 사람이나 드러낼 수 있는 취향 아닐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가난한 이미지는 두렵거나 혐오스럽거나 부끄럽거나일 것이다. 가난은 종종 무능함과, 생활고와, 사람들의 냉랭한 반응과 연결되니까 말이다. <학문의 즐거움>을 쓴 히로나카 헤이스케 정도로 다른 비범함이 있어서 그런 인식에서 자유로우면 또 모를까.

그래서 여기에 몰래 쓰는 말인데 가난한 문화가 좀 좋다. 10-20년쯤 옛날 서울 같이 노점상과 분식점과 작은 주택이 즐비하고 그래서 노인들이 태반인 가난한 동네 분위기가 좋다. 창너머로 다 보이는 옛날식 미용실에서 파마하는 아주머니 모습에 미소짓게 된다. 칵테일바보다는 피맛골이나 종로 쪽에 있던 허름하고 좁은 막걸리, 빈대떡 집이 좋다. 학부시절 아웃백과 피자헛에서 하던 생일파티보다 솔밭식당 국수와 미송 철판볶음과 기절초풍왕순대 순대국밥이 그립다. 지방에 여행을 가면 전원마을이니 허브농원이니 외도처럼 어색한 유럽식 공간보다 슬레이트 지붕집에 빨래줄이 늘어진 골목길을 걷는 게 좋다. 길을 다니는 아무렇게나 생긴 똥개나 코숏이 제일 귀엽다. <소름>이나 <원스> 주인공의 사랑이 더 애틋하고 <소림축구>의 구질구질하고 못난 사람들이 사랑스럽다. 초라한 옷차림의 아버지가 저녁에 어린 두 딸 손을 잡고 공원을 걷는 뒷모습은 어쩐지 오래도록 쳐다보게 되었다.

아, 부촌에 살지 않아도, 근사한 차와 집이 없어도, 명품 따위 안 걸쳐도, 촌스럽고 투박해도 그저 떳떳하고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생의 다른 행복이 충분해 무심한 사람이라면 좋았을 텐데. 누군가는 의미있는 일에 마음 쓰며 그렇게 살고 있다는 걸 알지만 나는 타인의 무시와 박대가 무서워서 적당히 맞추어 살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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