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0/08 20:47
[essay]
대학교 2학년 때였던가, 당시 임상심리 대학원에 있었던 한 선배 언니로부터 이부영 선생님의 <분석 심리학> 책을 추천받아 사본 뒤 다시는 들척이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요즘 가끔 뒤적여 본다. 융의 이론에는 절대 관심 없다고 결론을 내렸었지만 지금은 좀 흥미롭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 심리의 기전을 밝히고 임상에 적용하는 과학 이론으로서 매력적인 게 아니라 그저 이론 자체의 내용이 우아해서 좋다고나 할까. 어쩐지 삭막하고 냉정하고 피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깊이 있고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이 만들어 냈을 것만 같은 이론이다. 예술적인 느낌을 주는 비유도 좋다. '그림자'나 '페르소나(=가면)' 같은 건 참 어울리는 상징적 언어 아닌가.
그림자 이론에 따르면 타인에게 강한 정동을 느끼는 건 내 '그림자'를 투사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 내 의식적 자아의 대척점, 깊이 잠재되어 있는, 혹은 억눌러 놓은 일부와 비슷한 사람에게 공연히 거부감과 혐오감을 갖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할 때 그 상대에게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일이 흔하지만, 긍정적인 느낌도 가능하다. 분석 심리학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 드물게 그림자가 긍정적인 측면을 띠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자아의식의 좋은 면이 억압되었을 때이며, 이때 ' 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는 흔히 외계로 투사되며 대개는 투사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그림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그리고 분석심리학에서 추천하는 성숙한 대처는 이런 것이다.
...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는다든가 투사된 그림자를 자아에 되돌려 나의 일부로 소화시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그림자가 '나'의 일부가 되려면 '내'가 그림자를 살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그 동안 내버려두었던 유치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되던 경향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살려서 체험해 보아야 한다. ... 그림자의 의식적인 살림은 오히려 더 큰 인격의 해리, 그림자에 의한 무의식적인 지배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그림자를 분화시켜 그 속에 담겨 있던 창조적인 힘이 발휘되도록 한다.
역시 사람은 너무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다양한 면모를 발달시키면서 사는 게 좋은 걸까. 이제껏 편향되게 살아왔고 그 편을 좋아했는데 내가 무시했던 부분을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더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그리고 문득 <어스시의 마법사>의 모티브가 융의 그림자 이론인 것 같아 찾아보니 르 귄 자신이 인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련된 글이 꽤 많다. 역시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은 문학 창작이나 비평에 활용하기에 좋은 이론인가 보다.
사람 심리의 기전을 밝히고 임상에 적용하는 과학 이론으로서 매력적인 게 아니라 그저 이론 자체의 내용이 우아해서 좋다고나 할까. 어쩐지 삭막하고 냉정하고 피상적인 사람이 아니라 내면이 깊이 있고 따뜻하고 성숙한 사람이 만들어 냈을 것만 같은 이론이다. 예술적인 느낌을 주는 비유도 좋다. '그림자'나 '페르소나(=가면)' 같은 건 참 어울리는 상징적 언어 아닌가.
그림자 이론에 따르면 타인에게 강한 정동을 느끼는 건 내 '그림자'를 투사했기 때문일 때가 많다. 내 의식적 자아의 대척점, 깊이 잠재되어 있는, 혹은 억눌러 놓은 일부와 비슷한 사람에게 공연히 거부감과 혐오감을 갖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림자를 남에게 투사할 때 그 상대에게 거부감을 가지게 되는 일이 흔하지만, 긍정적인 느낌도 가능하다. 분석 심리학 책에 이런 내용이 있다.
... 드물게 그림자가 긍정적인 측면을 띠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자아의식의 좋은 면이 억압되었을 때이며, 이때 ' 나'는 스스로를 지나치게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좋은 것'은 남에게만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는 흔히 외계로 투사되며 대개는 투사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그림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그리고 분석심리학에서 추천하는 성숙한 대처는 이런 것이다.
... 그림자의 존재를 깨닫는다든가 투사된 그림자를 자아에 되돌려 나의 일부로 소화시킨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 그림자가 '나'의 일부가 되려면 '내'가 그림자를 살려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식적으로 그 동안 내버려두었던 유치하고 좋지 않다고 생각되던 경향을 스스로 적극적으로 살려서 체험해 보아야 한다. ... 그림자의 의식적인 살림은 오히려 더 큰 인격의 해리, 그림자에 의한 무의식적인 지배를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무의식의 열등한 인격, 그림자를 분화시켜 그 속에 담겨 있던 창조적인 힘이 발휘되도록 한다.
역시 사람은 너무 극단에 치우치지 말고 둥글둥글하게 다양한 면모를 발달시키면서 사는 게 좋은 걸까. 이제껏 편향되게 살아왔고 그 편을 좋아했는데 내가 무시했던 부분을 다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더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그리고 문득 <어스시의 마법사>의 모티브가 융의 그림자 이론인 것 같아 찾아보니 르 귄 자신이 인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관련된 글이 꽤 많다. 역시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은 문학 창작이나 비평에 활용하기에 좋은 이론인가 보다.


